나는 작아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by 파동과입자 ㆍ 2017/09/10 11:50

‘나 지금 뭐 하고 있었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카페 구석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에 의지해 한동안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창밖의 풍경을 마주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빠져버린 나만의 사색 시간. 아쉬웠다. 멍하니 보고 있던 그곳은 순전히 나만의 세상이었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우두커니 생각하다 마주친 상상 속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었는데 말이다.

사색의 중심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도 있었다. 이루지 못할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희미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현실의 씁쓸함을 토로하기도 하였으며,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실망하기도, 혹은 미래의 다가올 내 모습을 다짐하기도 하였다. 가끔은 떠나버린 옛 애인을 만날 수도 있었다. 내가 해주지 못했던 일들. 서로에게 상처 주었던 일들. 짤막하게 행복했던 기억들을 뒤로하고 가슴속에 묻어두어야만 했던 순간들까지. 하나하나 곱씹어보면서 씁쓸했던 기분을 느껴보기도 했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과거의 사건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내가 가진 상상에서만은 예외였다. 나만이 할 수 있었던 생각들. 때로는 거침없고, 비정상적인 세계들까지도 온전하게 내 몫이었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먹고사는 핑계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주치는 상상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사색의 시간은 줄어들고 현실의 존재로만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상상하는 시간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다 큰 어른인 주제에 그런 아이들 같은 상상은 이제 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 같은 것이었나보다.

욕심이 앞서, 이책 저책 읽다 보니 책장의 마지막을 덮어 본 지가 가물가물해졌다. 무심코 꺼내든 책 속에는 내가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책갈피를 발견하면서 내가 잠시 읽다 만 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활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며 살까 말까 수십번, 수백의 고민 끝에 어렵게 구한 값비싼 카메라에는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스마트폰의 인터넷 아이콘을 누르고 읽으라는 기사는 안 읽고 댓글만 보며 위안으로 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위로했던 다짐은 이미 없어져 버린 지 몇 달. 잠들기 전 어두컴컴한 방안, 침대에 누워서 오늘 나 뭐했지. 오늘은 어떻게 지나가 버린 것인지 하고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지나버린 하루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일은 잘해야지 하는 한탄 섞인 희망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만 뒤처지는 것만 같았다. 멍하니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 혼자만 여기 남아 뚜렷한 목표 없이 제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맴도는 것만 같았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아등바등 나아가려고만 했었던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볼 시간조차, 그럴 여력조차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나 보다. 막상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카페에서 문득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점점 소멸해 가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나만의 상상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상상이 비워진 자리는 내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미래의 먹고 살 궁리에 대한 걱정으로 대신하고 있었을 뿐. 탁자 위에 식어 버린 커피 마냥, 생각은 가물어 가고 있었고, 가물어가는 만큼 내 세상도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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