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즈 업데이트
by 파동과입자 ㆍ 2022/09/2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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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한 거 같은데, 변한 거 하나 없는
윈도우즈 업데이트 같은 내 인생.
부가가치 없는 듀티프리 내 인생.

몇 년 전 즈음, 친구들 있는 모임에 나갔던 적이 있다. 한참을 직장에서 치열하게 버티고 있을 때여서 그런지 누구 하나 모나거나 튀지 않는 그저 그런 소소한 모임이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면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한다고. 아주 사소한 사건이라도 생기면 서로 대단하다거나, 미친놈이라거나 하면서 귀 기울여 주는 그저 그런 모임이었다. 그 중 한명이 내가 쓴 저 글을 읽었다면서 특히 “듀티프리”라는 단어가 생각이 난다고 했다. 마치 자기 인생도 부가가치 없이 세금도 못내는 인생을 사는 거 같아서 이따금 허무해진다고. 부가가치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별다를 바 없는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다 싸구려 인생을 산다고 한탄을 했었다.

윈도우즈 업데이트.
아침에 출근해서 윈도우즈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화면이 뜬다면, 다들 한탄 섞인 한숨이 흘러나온다. 짧게 끝나면 금방 끝나기도 하지만, 길게 걸리면 30분이 넘게 걸릴 때도 있었는데, 언제 끝날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다들 일어나서 담배 피우러 가거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업데이트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는 별것도 아닌데 시간만 흘렀다, 바뀌는거 하나 없는데 이런거 꼭 해서 시간만 낭비한다며 짜증 섞인 말투로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진다. 나 역시 그랬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지금은 윈도우즈 업데이트를 하면 몰래몰래 잘도 하고 있더라. 예전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뿐더러, 짜잔 하면서 우리는 이미 업데이트했습니다 라며, 스스로 대견하게 말해주는 것만 갔다. 그럴 만도 한 게 전 세계 사람들한테 그렇게 욕을 먹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윈도우즈 프로그램 입장이었으면,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원망스러웠을 테니.

한편으로는 윈도우즈 업데이트 화면이 뜰 때마다 안타깝게만 느껴졌었다. 시간을 들여서 뭔가 바뀐 거 같은데 전혀 바뀐 게 없다는 게 마치 내 인생 같다고 생각했다. 변한 거 하나 없는 인생에 왜 그렇게 서글퍼진 것인지, 무언가 훨씬 나은 삶을 살 것처럼 살아가는데, 왜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게만 되는 것인지.

매일 같은 하루를 사는 게 지치고 힘들 때가 있었다. 별다를 거 없겠지.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겠지.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버리는 매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체념하거나, 이해하거나 어르고 달래고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보내야 하는 인고의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갈 것만 같았다. 내일도, 모레도 달라질 거 하나 없는 삶이 마치 감옥같다고 생각을 했었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탈출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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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박준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그 때의 나는 아무렇지 않았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이 떠지는 구나, 오늘도 별다를일 없이 지나가겠구나. 라며 소모했던 시간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최전성기를 지나고 있었음에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블로그 글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되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점점 뒤처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원래의 위치를 찾아가려면 헤엄을 처야 한다.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힘을 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었다.

지켜야 할게 많아지게 되고, 주변의 관계가 얽히고설키게 되면서 제자리의 위치에서 하루를 살아가는게 예전만큼 쉽지 않게 되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몰랐었지만, 이제는 정말 노력해서 살지 않으면 과거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파도를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그런 기분으로 제자리의 내 위치를 찾아가려면 서너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뒤늦게 깨닫게 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그때가 좋았다라며 후회하는 버릇은 늘 여전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감정의 태워가며 희망을 놓지 않는 그 모습이 정말로 가치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면서도 어쩔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비긴셈 치자며, 모른체 하며 덮어두는 행동의 반복이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컴퓨터를 끄려고 보니,
화면 하단에 업데이트가 완료 되었다며 주황색 동그라미가 떠있다.
이번에는 웃으면서 눌러주기로 했다.
그래봐야 제자리이니까.
속에서 열불나도록 노력하고 나아가려 하지만,
재부팅이 끝나고 나면
어차피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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